【 청년일보 】 정치공작(政治工作)이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꾸미는 공작을 말한다. 정치공작은 한번 맛보면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특히 공작을 곧 정치로 아는 정치 집단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 선거는 권력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다. 천하를 걸고 한판의 승패를 겨루는 것인 만큼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흑색선전이나 모함,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는 배격해야 할 정치적 암세포다. 하지만 승리가 선(善)인 풍토에서는 한낱 구두선일 뿐이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게임이다. 성공만 하면 결과를 되돌리지 못하고, 불법성도 소리소문 없이 묻힌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관련해 제기됐던 3대 의혹은 모두 정치공작의 산물이었다.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후보 측근의 20만 달러 수수 의혹, 후보 부인의 10억원 수수 의혹은 모두 근거 없는 거짓말이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이를 선거에 대대적으로 이용했고,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훗날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김대업 등 몇 사람만 처벌 받았다. 그 모든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우겼던 정치인들이 잘못을 시인한 일도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정치공작을 벌인 측이 승리를 낚아챈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고발사주' 의혹이 제기돼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재직 당시인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검찰을 통해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여권 인사들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사주(使嗾)는 남을 부추겨 나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희대의 '정치공작'이라며 맞서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알기 어렵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실체가 안갯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어렴풋한 그림은 그려볼 수 있다.
시계(時計)를 4·15 총선 전후로 돌려보자. 선거를 두 달 남짓 남겨둔 지난해 2월 청년 정당 깃발을 전면에 내세웠던 브랜드뉴파티가 미래통합당에 전격 합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브랜드뉴파티 대표가 주로 진보 진영에 몸을 담았던 이력 때문이다. 바로 고발사주 의혹을 신생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에 제보한 조성은씨다.
뉴스버스는 올들어 지난 5월 24일 설립돼 6월 21일 사이트를 오픈했다. 발행인은 이진동 기자다. 그는 지난 2016년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을 챙기는 CCTV 영상을 공개하고, K스포츠재단 보도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한 인물이다.
4·15 총선 당시 조성은씨가 대외적으로 썼던 직함은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성은씨는 지난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국민의당에서는 바른정당과 통합을 앞두고 세력 다툼이 벌어졌을 때 천정배 전 공동대표의 추천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된다.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다.
4·15 총선 때 송파갑에 출마한 김웅 의원에게는 검찰 관계자로부터 적지 않은 자료와 민원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이라는 연고 때문으로 보인다. 김웅 의원은 이를 당 법률지원단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의 고발사주 논란이 빚어진다.
뉴스버스는 한 제보자를 인용해 김웅 의원이 4·15 총선 직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준성 검사로부터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받아 미래통합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제보자는 바로 조성은씨로 텔레그램 대화방에 있던 파일 형태의 고발장을 다운받았다는 것이다.
조성은씨는 김웅 의원이 고발장을 텔레그램으로 보낸 뒤 전화를 걸어 "대검 민원실에 접수하라. 절대 서울중앙지검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발장을 당에 전달하지도, 대검 민원실에 접수시키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조성은씨는 "선거 막바지라 당내 상황이 굉장히 어수선했고, 총선 이후에도 얼마든지 당에서 고발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런데 검찰의 고발 요청이 있었다면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지 2개월 밖에 안 된 조성은씨가 아무런 조치 없이 '패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을 통해 미래통합당에 전달했다는 고발장은 모두 2개다. 뉴스버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3일 전달된 고발장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뉴스타파 기자, MBC 기자 등 13명을 피고발인으로 적시하고 있다.
고발장은 (피고발인들이) 최강욱, 황희석 후보를 국회의원에 당선시키기 위해 일련의 기획에 의한 악의적 허위보도를 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윤석열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 여사, 한동훈 검사장 등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도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5일 후인 4월 8일에 전달된 고발장은 최강욱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뉴스버스가 홈페이지에 올린 취재 경위 글을 보면 조성은씨는 지난 6월 말 뉴스버스 기자와 식사를 하던 중 김웅 의원이 보냈다는 텔레그램 대화방 화면을 보여준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3주 후인 7월 21일 조성은씨는 뉴스버스에 캡처한 파일 일부를 보냈다. 나머지는 8월 10일과 12일 캡처됐다.
해당 자료를 1년 3개월 가량 묵히다 제보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나머지 파일을 캡처한 날짜도 공교롭다. 조성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과 식사를 함께 한 8월 11일의 전날과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성은씨와 박지원 원장은 뉴스버스가 9월 2일 고발사주와 관련한 첫 보도를 하기 며칠 전인 8월 말에 또다시 만났다.
뉴스버스의 보도가 나간 바로 그날 김오수 검찰총장은 대검 감찰부에 감찰을, 박범계 법무장관은 법무부 감찰관실에 확인을 지시했다.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터넷 매체가 대선판을 뒤흔드는 대형 보도를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김오수 총장과 박범계 장관의 행보는 '전광석화'가 따로 없는 모양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석열 전 총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물론 이 사건을 수사3부의 친여 성향 검사에게 배당했다.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김숙정 검사가 주인공이다. 김숙정 검사는 공수처에 가기 직전까지 법무법인 LKB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다. LKB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의 사건 변호를 도맡아 온 것으로 유명한 로펌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성은씨는 지난 3일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익 신고를 할 테니 공익신고자로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동수 부장은 휴대전화 제출을 조건으로 수락했는데, 공익신고자 신청을 하는 사람이 검사장급인 대검 감찰부장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동수 부장은 추미애 법무장관 시절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밀어붙인 주역 가운데 한명이다.
조성은씨는 뒤늦게 김웅 의원과 주고 받은 텔레그램 대화방의 파일을 제보한 것에 대해 "그 전에는 텔레그램 사용을 빈번히 하지 않았다"며 "뉴스버스 기자와 만나서 대화방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정말 그것이 고발을 사주하는 문건이었다면 4·15 총선용이었을 것이다. 당시 어떤 이유에서든 써먹지 못했다면 폐기하고 말 일이었을텐데 왜 지금 와서 제보한 것일까. 누군가 그 문건의 정치적 이용가치를 상기시켜줬거나 코치를 해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고발장 전달 창구로 지목된 김웅 의원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여권이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주장하는 손준성 검사는 "어떤 경위로 이 같은 의혹이 발생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밝혔다.
손준성 검사는 "최근 공수처가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보낸 사람이 저라고 확인해 준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는 등 공수처 관계자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의심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여권이 손준성 검사를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은 조성은씨가 제보한 텔레그램 파일마다 '손준성 보냄'이란 문구가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손준성 보냄'이란 문구만 갖고 해당 파일이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보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텔레그램 시스템상 '손준성 보냄'이란 문구는 중간에 여러 명을 거쳐 파일이 전달되더라도 '꼬리표'처럼 붙는다. 중간에 엉뚱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검찰이 야당에 고발을 사주했다는 조성은씨 주장의 근거가 약해진다. 이 때문인지 윤석열 캠프는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한 표현들이 많다. 시민단체나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주장한다.
조성은씨는 뉴스버스의 보도 이후 텔레그램 대화방을 '폭파'했다. 법조계에서는 조성은씨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없고 캡처 화면 등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증거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 있던 파일만으로는 전달받은 경로를 역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조성은씨가 김웅 의원과 주고 받은 파일과 메시지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다운받아 캡처하고, 불리한 것은 삭제한 채 휴대전화를 한동수 부장에게 제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여권이 손준성 검사를 윤석열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하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는 전국의 수사 정보가 모인다. 그리고 이곳에서 추려진 정보는 검찰총장에게 직보된다. 그렇지만 이런 업무를 담당한다고 해서 윤석열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일 수 있다.
오히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본경선 8번째 합동토론에서 이와는 반대되는 폭탄급 발언을 했다. 손준성 검사의 인사와 관련해 윤석열 전 총장뿐 아니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엄호세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손준성 검사를 지난해 2월 수사정보정책관에 임명했고, 8월에는 유임시켰다. 검찰총장에게 수사정보정책관은 '손발'이다. 그런 만큼 손준성 검사를 자르려 했으면 윤석열 전 총장이 반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윤석열 전 총장이 로비를 했다는 말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추미애 전 장관 자체도 "저한테 직접 한 것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청와대와 여당의 로비 사실 여부.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추미애 전 장관에게 "왜 손준성 검사를 그 자리에 앉혔느냐"고 추궁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어느 정도 정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는 추미애 전 장관이 꽃아넣은 인물 아니냐는 힐난임과 동시에 손준성 검사가 윤석열 전 총장의 최측근이라는 주장을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고발사주를 둘러싼 정치권의 기상도는 변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듯 공세에 나섰던 조성은씨의 발언이 곳곳에서 의혹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은씨는 지난 12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뉴스버스가 첫 보도한) 9월 2일은 우리 (박지원 국정)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제가 배려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다. (뉴스버스 발행인인) 이진동 기자가 (윤석열 전 원장을) '치자'고 결정했던 날짜다. 그래서 제가 사고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조성은씨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 조성은씨가 해외로 출국하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캠프에서 조성은씨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공수처에 촉구한 배경이다.
지난 14일에는 자신 외에 검찰에 또다른 내부 고발자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본인 외에 고발사주에 관여했던 검찰 인사가 공수처에 내부고발을 했다는 것이다. "제3의 성명 불상의 인사가 있다. 사실 관계가 드러나면 파장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조성은씨의 주장이다.
사실 뉴스버스의 보도 자체에는 어디에서도 고발사주와 윤석열 전 총장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 고발장 역시 아직은 괴문서로 출처와 작성자가 밝혀져야 한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윤석열 전 총장을 즉각 피의자로 입건하고 범여권의 정치인들은 몇 단계를 건너뛴 채 윤석열 전 총장을 고발사주의 배후로 몰아가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2019년 7월 취임해 2021년 3월 사퇴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의 의혹을 계기로 정부·여당과 날을 세우기 시작했고, 추미애 전 장관과는 2020년 1월 취임 직후부터 대치 국면을 이어갔다. 이른바 '추윤갈등'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당시 윤석열 전 총장은 고발을 사주할 이유가 없었다. 민감한 시기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 실익도 없는 일을 할 이유가 뭐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보냈다는 사실에서 윤석열 전 총장의 지시와 사주를 추론하는 논리라면 드루킹이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와 사주를 추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역시 진중권 전 교수의 관점이다. 분명한 것은 고발사주와 정치공작 주장 사이에 너무나 큰 갭이 존재하며, 이는 곧 정치적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제 고발사주 논란은 '밀리면 죽는 게임'의 양상이 돼 가고 있다. 또한 '스모킹 건'이 나오지 않는 이상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은 이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감(感)을 잡고 있을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