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압승한 것은 진보 성향으로 알려졌던 '이남자', 다시 말해 20대 남성의 공이 컸다. 지난 7일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절대 다수인 72.5%가 오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보수 성향이 강한 60세 이상 남성의 70.2%보다도 높은 수치다.
반면 40대 남성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변함 없는 지지 의사를 보여줬다. 실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 연령대에서 40대 남성에서만 과반이 조금 넘는 51.3%의 표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의 이런 간극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시대정신과 경제에 대한 인식 및 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리얼미터의 배철호 수석 전문위원은 8일 "20대 남성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부동산 문제로 불거진 공정의 가치, 그리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따른 책임성 등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40대 남성에 대해서는 "이번 4·7 재보궐선거를 전통적 시각인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결로 봤다. 이 지점에서 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의 선택이 갈렸다"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표방하는 페미니즘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20대 남성의 가장 큰 불만은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당장 돈을 벌 아르바이트 자리가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0대 남성 같은 경우 직장 내 안정적 위치를 확보한 데다 20대 남성보다는 부동산 문제 등에 덜 민감하다"며 "경제적 불만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진영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시대정신,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장기화가 유발한 경제 침체가 두 세대를 갈라 놓았다는 것이다. 20대 남성은 그동안 한국 정치 지형도에서 대표적 진보층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중도층으로 반 걸음 보폭을 옮기면서 3050 중도층과 함께 강력한 스윙보터가 됐다. '중도층은 허상'이라며 평가절하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등 돌린 중도층으로 인해 패배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확고해진 한국 사회에서 중도층의 향배는 정치적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보수와 진보 정당의 지지기반이 굳어진 상황에서 정당 지지율이 움직이는 속도와 각도를 결정하는 것은 중도층의 스탠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도층의 표심을 가르는 주요 요인은 이념이 아니다. 정당 일체감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점점 구체적인 사안과 정책에 따라 지지와 반대를 오가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고정 지지층에 견줘 이슈의 흐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는 정부와 여당의 불공정, 내로남불, 무능, 오만에 중도층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역(逆)으로 국민의힘은 정부와 여당의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정권심판에 따른 전리품을 챙긴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지난해 4.15 총선까지 잇따라 패배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주요 정당이 네 번 연속 패배한 경우는 없었다. 이는 보수 야당에 대한 중도층의 '비호감' 때문이다.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으로 계속 당명은 바뀌었지만 기득권을 대변하는 이미지와 체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했다고 해서 비호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수권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보는 것은 더욱 아니다. 변화와 쇄신을 하지 않으면 중도층은 언제든 돌아서게 되고, 이는 국민의힘이 또 다시 좌초하는 동인이 될 수 있다.
재보궐선거 하루 후인 8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SNS에는 '자만 경계령'이 내려졌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 진 것이지 국민의힘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심의 무서움을 목도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