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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정권 교체 열망 담은 헌정사 초유의 30代 당대표 선출

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당선···국민의힘 '사령탑'으로 내년 3월의 대선 지휘
국민, 야당 환골탈태 수단으로 세대교체 선택···궁극적 지향점은 정권교체

 

【 청년일보 】 야당에 언제든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집권 세력의 두려움은 독주(獨走)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특히 지난해 치러진 4·15 총선 이후 야당의 존재감은 사실상 부재(不在) 상태를 면치 못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을 태어나서는 안될 귀태(鬼胎) 당으로까지 몰고 갔다.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를 의미한다. 사실상 무장해제 당한 셈이다. 

 

지난 2019년 연말 더불어민주당은 새해 예산안에 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도 날치기 통과시켰다. 며칠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예산안을 여권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다음해 치러질 4·15 총선을 겨냥한 초대형 거품 예산을 거의 손대지 않고 통과시켰다. 더구나 민주주의 경쟁 규칙에 해당하는 선거법과 한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공수처법까지 군사작전 벌이듯 처리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라의 기본 틀을 정하는 법과 제도를 야당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 특히 군부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쟁점 법안을 한 번에 무더기로 처리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정치는 설득과 타협, 그리고 대화를 요체로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쏠림이 심화되면 균형과 견제가 실종된 제로섬 게임, 즉 '정치 실종'에 이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권은 4·15 총선에서 개헌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180석을 얻자 '입법독재'를 가속화했다. '새는 왼쪽 날개로만 날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선과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셈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의 일방통행은 21대 국회 개원부터 시작됐다. 국민의힘과 원(院) 구성 협상이 여의치 않자 53년 만에 야당 없이 국회의장을 단독 선출했다. 관례상 제1야당이 맡는 법사위원장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한 것을 비롯해 전(全)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독식했다.

 

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요 현안이나 쟁점 법안에서도 '패싱'은 일상이 됐다. 제대로 된 반대토론이나 심의를 통한 합의 대신 강행 처리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권이 수십 년 전 군부정권 행태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집권 세력의 폭거를 견제하고 막아야 할 야당의 지리멸렬이다.

 

4·15 총선 역시 의석수만 보면 유권자들이 야당을 대안세력 혹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야당을 외면한 것도 아니다. 

 

실제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보다 무려 75%나 많지만 득표율은 8.4%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수도권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6배가 넘는 의석수를 얻었지만 득표율 차는 12.5%포인트다. 부산 역시 의석수는 5배 차이가 났지만 득표율 차는 8.9%포인트였다. 

 

1년 후에 치러진 4·7 재보궐선거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성(性) 추문과 집값 폭등이라는 악재가 국민의힘 승리로 이어진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즉 여권의 독선과 오만에 화가 난 민심이 심판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종 투표율이 45.36%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흥행을 거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했던 50%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현재와 같은 선거인단 체제로 전당대회를 치른 지난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사실상 전당대회를 당원 이외의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은 정당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11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했지만 한 번도 당선되지 못했던 30대 청년이 중진 의원들을 제치고 당선된 것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4·15 총선 참패 후 1년 넘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어온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임시 지도체제를 정리하게 됐다. 새 지도부는 공식 임기 2년으로 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을 진두지휘하고, 이준석 대표는 사령탑을 맡게 된다.

 

이준석 대표는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전형 논리로 무장해 웬만한 논객이 아니면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시원시원하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솔직하다. 젠더 문제처럼 비판받기 쉬운 주제에도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이야기한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덕목이다.

 

더구나 그는 기성 정치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이는 새로움으로 정의되고,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소구점이 된다. 정치적 셈법과 전술을 동원한 중진 의원들이 추풍낙엽의 양상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중진 의원들은 영남 차별론, 계파론, 음모론 등을 잇달아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낡은 시대'에 갇혀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로 이른바 '제3지대론'도 힘이 빠지게 됐다. 제3지대론은 반문(反文) 민심을 등에 업은 개혁·중도 세력이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을 대체하는 새로운 야당으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힘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표현대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민심의 태풍이 시간표상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먼저 닥쳤고, 결과 역시 정치권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버렸다.

 

일부에서는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세대교체'에 포커스를 맞춰 의미가 과대평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치사를 보면 젊은 피의 수혈 등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흐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세대교체 주역들은 새로운 시대상에 걸맞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세력화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정치 주도세력의 교체를 의미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주류 교체론'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의 정치 주도세력이 처음 바뀐 것은 1961년 5·16 군사정변 때다. 당시 40대의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김종필 국무총리 등 30대의 군(軍) 엘리트들과 함께 조선 말 출생한 세대 중심의 구(舊) 질서를 무너뜨렸다.

 

1960년대 말 김영삼 대통령이 불을 붙인 40대 기수론은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립정권으로까지 이어지는 3김(金) 시대의 시발점이 됐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3김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586세대가 정치 주도세력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586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지만 산업화의 과실을 누리면서 2030세대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준석 돌풍의 근간에는 이 같은 586세대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위선과 내로남불로 대변되는 집권 세력에 대한 집단적 비토다. 

 

한국 정치가 구조적 차원의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수 야당에서 30대 당대표가 나오면 여권은 대응할 논리를 만들기 어렵고, 대항마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야당이 변화를 화두로 여권 공격에 주도권을 쥐게 되면 부동층, 즉 스윙보터는 급격히 야당으로 쏠릴 공산이 크다.

 

특히 2030세대는 내년 3월 대선에서 판세를 좌지우지하는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진보는 무능력하다는 담론이 작동해 기존의 '진보는 도덕적이고 보수는 부패하다'는 인식의 고리마저 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의 독선과 오만을 경험한 유권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준석 대표체제가 뿜어 낼 에너지가 얼마나 되고,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얼마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의 영역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분 것은 제1야당 대표 선출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넘은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으로 봐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세대교체와 정치개혁을 통해 지리멸렬한 수구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정권교체의 동력이 돼 달라는 주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번 국민의힘 대표 경선 결과는 민주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정권교체 열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석 돌풍은 그런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낡은 야당을 뜯어 고치겠다며 국민이 직접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환골탈태의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세대교체를 선택했고, 이의 궁극적 지향점은 정권교체라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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