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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볼썽사나운 한국타이어家의 경영권 분쟁

법원, 성년후견 심문 개시···조양래 회장 건강이상설 불식
기업 이미지 실추 및 기업가치 하락, 일반주주로 전가돼

 

【 청년일보 】 한진그룹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사 (주)한진칼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쟁을 겪었다. 고(故) 조양호 회장의 유지가 "가족들끼리 잘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는 것이었음에도 3세들의 경영권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아직도 여진(餘震)이 남은 상태다.

 

우리나라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낯설지 않다. '왕자의 난' 혹은 '형제의 난'이라고 이름 붙은 경영권 분쟁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성년후견' 청구가 새로운 분쟁 카드로 부상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한국타이어가(家)다. 성년후견은 질병ㆍ장애ㆍ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정하는 제도다.

 

한국타이어가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7월 30일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을 상대로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감독인을 선임해 달라고 심판을 청구하면서 본격화됐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국타이어그룹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거쳐 사명을 변경한 것이다.

 

조양래 회장은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 외에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 차남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사장, 그리고 차녀 조희원씨가 그들이다.

 

조희경 이사장의 주장은 동생인 조현범 사장에게 부친이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의 지분을 매각한 것이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인지 객관적 판단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령인 조양래 회장의 판단에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조양래 회장은 1937년생으로 올해 85세다.

 

앞서 조양래 회장은 지난해 7월 26일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량(23.59%)을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에 따라 조현범 사장은 자신이 기존에 보유하던 지분 19.31%를 더해 총 42.90%의 지분으로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룹의 경영권을 낙점받은 것이다.

 

이전까지 조현범 사장의 지분은 형인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과 거의 같았다. 하지만 블록딜 방식의 매각 이후 조현범 사장의 지분은 조현식 부회장(19.32%), 조희경 이사장(0.83%), 조희원씨(10.82%) 등 3남매의 지분을 합친 30.97%보다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게 됐다.

 

조희경 이사장은 "(아버지인) 조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전부를 매각했는데,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룹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지분 매각이) 밀실에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조희경 이사장은 조양래 회장이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 의사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양래 회장은 조희경 이사장이 성년후견을 청구한 바로 다음날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저야말로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조현범 사장에게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 왔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등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고 덧붙였다.

 

조양래 회장은 또 "저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고, 향후 그렇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고민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관여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아버지의 지론과 다른 결정이라는 조희경 이사장의 주장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조양래 회장이 차남에게 경영권을 낙점한 것은 롯데그룹이나 한진그룹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롯데그룹은 고(故) 신격호 총괄회장이 후계자를 명확히 정해주지 않아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한진그룹 역시 조양호 회장이 후계자를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타계하면서 '남매분쟁'이 일어났다. 

 

서울가정법원은 21일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문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이뤄져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첫 심문기일인 만큼 재판부와 소송 대리인들이 감정 절차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조양래 회장의 심문 일정 등을 조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양래 회장은 향후 서울가정법원과 업무 제휴가 이뤄진 서울대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 서울아산병원 중 한 곳에서 신체 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조양래 회장은 이날 건강이상설을 불식하기 위한 차원에서인 듯 법원에 직접 출석했다. 건재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통해 성년후견 청구가 기각되면 조현범 사장 체제를 위협할 방법은 더 이상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성년후견 청구가 인용될 경우 조현범 사장에게 한국앤컴퍼니의 지분을 매각한 조양래 회장의 결정에 효력이 없다는 후속 민사소송이 제기될 전망이다.

 

성년후견 개시로 후견인이 정해지면 조현범 사장에 대한 상속 역시 제동이 걸린다. 조양래 회장이 상속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조양래 회장이 상속 의지를 내비친다고 해도 후견인이 이를 무효화할 수 있어서다. 오히려 조양래 회장이 매각한 지분을 재(再) 매입하는 상황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추가 소명자료 제출을 거쳐 법원이 성년후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까지 짧게는 3∼4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으나 늦어도 올해 안에는 1차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조양래 회장이 법원 등 공개 석상에서 지분 매각이 자신의 뜻임을 명확히 확인할 경우 한국타이어가의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볼썽사나운 경영권 분쟁은 기업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 기업가치 하락을 가져온다. 경영권 분쟁의 피해가 고스란히 기업과 일반주주의 몫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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