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토지(土地)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요소이자 기반이다. 토지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고, 작물과 가축을 기를 수도 없다. 사실상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토지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토지를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욕구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하지만 토지는 다른 생산요소와 달리 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역사상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은 토지 소유 문제에서 비롯됐다.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상적 기원을 따지면 고대 중국의 정전제(井田制)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요즘 화두로 떠오른 토지공개념의 시조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지 조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헨리 조지는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왜 세상은 날로 진보하고 있는데, 빈곤한 자들이 생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답은 토지였다. 토지 소유자들이 지대(地代)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땀흘려 일해도 지대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대안으로 토지단일세를 제시한다. 토지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 세금으로 환수하되 이외의 모든 세금은 폐지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토지 모두를 사유화한다. 반면 공산주의는 자본과 토지 모두를 국유화한다. 헨리 조지의 경우 자본은 사유화하되 토지는 국유화하자고 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반씩 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것의 근거를 알려면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미국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은 1862년 자영농법(Homestead Act)에 의해 서부의 광활한 토지를 개척자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 토지 소유권을 준 것이다. 그리고 철도망이 전국에 깔리면서 가격이 올랐다.
19세기 말 무상으로 나누어 줄 토지가 사라지고, 토지 가격이 오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정부로부터 토지를 불하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소득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지게 된 것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세금으로 거두자고 했고, 이 주장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그리고 우리나라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우기 토지세 외에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다른 세금은 걷지 말자는 것이 헨리 조지의 주장이다. 지금처럼 각종 세금을 거두고, 그에 더해 토지 소유에 따른 징벌적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 아니다.
토지공개념론자들이 내세우는 게 '소유와 이용의 분리'다. 형식적인 소유권은 허용하되 이용권은 국가가 개입해 필요한 사람에게 배분하자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명문화하고 있는 헌법 때문에 토지를 몰수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유화 또는 국유화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공유지(共有地)의 비극 같은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마을의 초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많은 소를 풀어놓게 되면 초지가 황폐화해지는 것처럼 공동체 전부가 피해를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쟁에는 '빼앗기 경쟁'과 '시장 경쟁' 두 가지가 있다. 빼앗기 경쟁은 제로섬 게임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반면 시장 경쟁은 자발적 교환을 전제로 한다. 쌍방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만 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합 게임의 형태를 취한다. 한마디로 시장을 통한 경쟁이 생산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토지공개념론자들은 국토의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헌법 122조를 들어 현행 헌법에도 토지공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견강부회다.
우리 헌법은 23조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광범위한 재산권 침해를 부정하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 2018년 토지공개념을 담은 개헌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보다 구체화된 내용을 담아 토지의 사용과 수익, 처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포함되면 새로운 부동산 규제를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공공성의 이름을 빌려 각종 규제의 명분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 대선주자들이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각종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출마 선언에서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을 헌법에 신설해야 한다”며 “토지공개념이 명확해져 땅에서 얻은 이익을 나누고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일에는 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환수법, 종합부동세법 등 일명 토지공개념 3법의 제·개정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토지공개념 3법은 택지 소유에 제한을 둬 부담금을 부과하고(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 환수를 늘리며(개발이익환수법), 사용하지 않는 토지에 가산세를 부과(종합부동산세법)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특히 법인의 택지 소유를 회사·기숙사·공장 건설 용도 이외에는 금지하고, 서울시와 광역시의 개인은 400평으로 택지 소유를 제한하는 내용까지 택지소유상한법에 넣었다. 이미 위헌 판정을 받아 폐기된 것을 상한을 높여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시장경제를 하고 있는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법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비필수 부동산의 조세 부담을 늘려 투기 가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며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보유세 부담을 국가가 일반예산으로 쓰지 않고 온 국민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면 그게 곧 기본소득”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는 특히 “투기성 부동산에 대한 부담은 세금 폭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강력한 징벌 수준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지에 중과된 세금은 결국 그 위에 들어설 주택, 사무실, 공장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여권의 대선주자들 모두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대로 답습하거나 한 술 더 뜨고 있다. 이는 대선후보 경선 승리를 위해 여권 지지층의 '입맛'에 맞춘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헌법에는 이미 토지의 공공적 이용을 위한 조항이 있다. 이를 근거로 각종 개발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토지에 대한 징벌적 규제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이 아닌 부동산 정치를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토지처럼 희소한 자원의 이용과 분배는 시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뤄질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때문에 기존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마당에 오히려 이념과 규제 강화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지난 4년간 경험했듯이 부동산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권의 최대 실정(失政)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부동산 정책의 보완 없이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의 잘못으로 빚어진 집값 폭등을 반시장적 정책으로 풀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권에서조차 “문제의 진단부터 잘못된 공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 분열을 가져올 것이 뻔한 토지공개념을 밀어붙이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이념은 물론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갈라치기 프레임으로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상당수 국민의 불만과 분노를 악용한다는 지적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정치공작 수준의 포퓰리즘이 될 수도 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