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때 ‘제2의 반도체’로 추앙받으며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발생한 화재사고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이 국내 시장 축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발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산업 현장의 활력을 회복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규제혁신을 통한 민간 주도의 ESS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2일 보고서를 통해 “2017년부터 시작된 ESS 화재의 원인 규명이 장기화됨에 따라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ESS 산업의 조기 쇠퇴가 우려되고 있다”며 “ESS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SS는 전기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설비로, 전력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으며, 국내에선 경제 성장을 이끌어나갈 ‘제2의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ESS는 ▲피크 감축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 ▲주파수 조정 등을 통해 전력 수급의 안정화 및 효율화에 기여한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글로벌 ESS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도 세계 ESS 산업 발전에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제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ESS 화재사고다. 지난해 10월까지 총 28건의 화재사고(LG화학 15건·삼성SDI 10건 등)가 발생했지만, 화재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ESS 사고원인 조사결과 및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했으나, 그 이후에도 추가로 5건의 화재가 발생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ESS 시장은 고속 성장 중인 글로벌 시장과 달리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시공·운영 등 ESS 산업 벨류체인 전반에 걸쳐 시장이 위축되고, 신규 투자가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시장 규모가 역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 ESS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11.6GWh에서 지난해 16.0GWh로 급증했지만, 국내 시장은 2018년 5.6GWh에서 지난해 3.7GWh로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현경연은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크게 ▲단기 보급성과에 치우친 한시적 지원제도 ▲시스템 차원의 통합 관리체계 미비 ▲정책적 일관성 부족에 따른 불확실성 리스크 등을 지목했다.
정해진 기한 내에 ESS를 설치할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몰식’ 지원정책으로 단기간에 보급 확대를 추진한 결과, 기술적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짧은 시간 내에 설치가 급증해 사고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ESS는 여러 기업들이 제조한 부품들이 통합된 시스템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안전성 검증도 통합된 시스템 차원에서 필요하나, 이런 검증을 수행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부재했으며 통합적 관리체계 또한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화재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처 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현경연은 “화재 발생 원인에 대한 1차 조사위의 결과 발표가 안정성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고, 후속 대책은 단편적이고 일관성이 부족해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미흡했다”고 말했다.
현경연은 우선 단기적 관점에서 ESS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차 사고조사위 결과 발표 등을 통해 발화의 명확한 원인을 공개하고, 향후 ESS 산업계가 자발적·주도적으로 사고방지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간 위축된 시장에 투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정책지원, ESS 산업 육성과 위기 대응을 리더십을 갖고 수행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 구성 등을 제안했다.
중장기적 대책으로는 ‘민간 주도의 ESS 산업 생태계 조성’이라는 큰그림을 제시했다. 현경연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도입 등 규제 혁신과 더불어 민간 기술력 검증을 위한 ‘공공 테스트베드’로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대한 지속적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정재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