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짧고 굵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우리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큰 축복일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층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수가 200만에 이른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이유는 살아 봤자 의미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본인과 주변 가족들을 괴롭게 하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본인이 자발적으로 작성해야만 법적 효력이 인정되고 작성 전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인지하여야만 합니다.
작성 후에는 지역마다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또는 지정된 의료기관에 등록 보관해야만 추후 일이 생겼을 때 인정받을 수 있는 조치입니다. 물론 언제든 본인 의사로 다시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난 이제 깔끔하게 갈 테니 연명치료 하지 마시오"라고 무덤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100세 가까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시는 경우나 긴 세월 신체부자유 상태의 중병을 앓던 환자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큰 병을 얻거나 사고 등으로 연명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된다면 가족이나 환자 모두 회복의 기적을 바라지 건강할 때 작성해 놓은 연명치료 거부를 진행하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깔끔한 마감이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영역일 것입니다. 병이나 사고를 미리 예견할 수 없는데 죽음의 방법을 미리 예정해 놓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라 여겨집니다.
흔히 여겨지는 '짧고 굵은 인생'이란 좀 더 모험심 강하게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일컫는 말이고, '가늘고 긴 인생'이란 무난하고 평범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뜻 합니다.
필자가 좌우명으로 받들며 사는 명언이 있는데 "오늘 당신이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생을 마감한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문장입니다.
살아가다 의지가 약해지고 나태해 질 때면 이 말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에 신체·정신 멀쩡히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죽음'.
그 끝에서 그나마 삶을 돌아볼 찰나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적어도 최선을 다해보지 못 한 삶에 대한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내 인생마감에 대한 깔끔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글 / 장석영 (주)효벤트 대표
동탄재활 요양원 원장
대한치매협회 화성 지부장
한국사회복지 인권연구소 인권 강사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치매케어 강사
동탄사랑 요양보호사 교육원 강사
(전) 의왕시 노인장기요양기관 협회 회장 (1대, 2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