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달 11일,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며 법 개정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TF 발족식에서 "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줄지 않은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며 "입법 취지와 달리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 취지가 현장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개정 이유를 말했다.
이후 지난달 26일,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현황 및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 강화, 기업의 안전 투자 촉진을 위해 향후 개선과제를 논의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날 발제는 강검윤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과장,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맡았다.
이 자리에서 강 과장은 "2022년 산업현장에서 전체 644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고, 전체 39명의 사망자 수가 감소한 가운데 오히려 법 적용대상인 50인 이상 기업에서는 8명의 사망자가 증가했다"며 중대재해의 현황을 설명했다.
이어 전 교수는 '시행현황 및 과제'를 발제하며 "경영계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보다는 법률을 지킬 수 없다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고, 노동계는 처벌 수준의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행정의 측면에서는 감독관이 사후적 수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아울러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고 재판 결과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됨을 고려할 때 형사처벌 수준을 높여 산재를 예방하려는 철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경영계는 운용 가능한 자율안전관리체계 모델을 만들어 적극적인 실행 태도를 보여야 한다"면서 "노동계는 기대한 수준의 엄벌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의 측면에서는 사후적 수사보다는 감독관이 현장에 나가 위험·유해 작업을 사전에 중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노·사·정 모두의 노력을 강조했다.
다음 날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이 되던 지난달 27일 산재·재난유가족과 피해자, 종교·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4.16연대 강당에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및 생명·안전 위기'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법 개정에 "법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줘 경영에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는 재계의 압박이 영향을 미쳤다며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변호사는 단체의 입장을 발표하며 "지난해 발생한 중대재해 568건 중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229건"이었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이어 "그럼에도 지난해 법 위반으로 기소된 건수는 11건으로 적용대상 건수의 5%에 그치고 있으며 기소된 업체는 중소기업들로 대기업은 모두 빠져있다"고 말했다.
검찰 등 정부 당국이 법 시행에 의지가 없어 재해를 막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법의 의미를 왜곡하고 집행을 방해해 놓고서는 법 시행 후에도 실제로 사망이 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정당성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더불어 개정의 방향이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면책하거나 행정처벌로 바뀌는 것"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예방을 통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합당해 보인다. 이는 유가족·피해자·시민단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처럼 높은 처벌 수준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부분이다.
전통적인 범죄 억제이론에 따르면 범죄억제에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소는 처벌의 엄격성, 확실성, 신속성이다. 엄격성은 강력한 처벌을, 확실성은 확실한 처벌 가능성을, 신속성은 범행 후 빠른 처벌을 말한다.
법 시행 후 1년간 강력한 처벌도, 확실한 처벌도, 신속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범죄가 억제될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성과 실효성을 단정해도 괜찮은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이미 개정을 위한 칼을 꺼내 들었다. 수정된 법이 범죄 억제 요소를 모두 갖출 수 있을지, 검찰이 모든 것을 갖춘 법을 시의적절하게 적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 청년일보=오시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