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으므로 수익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이른바 '상생금융'의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해당 발언은 지난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금융권 안팎에선 후폭풍이 거셌다. 우선 공공재 발언 이후 국내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KB금융지주의 주가는 대통령의 발언 후 첫 거래일인 14일과 15일 각각 전일과 비교해 각각 2천300원(4.16%)과 2천600원(4.91%) 하락했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도 역시 우사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은행권 안팎에서도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은행업이 국민의 재산을 보관, 관리하는 만큼 공공성을 띠고 있는 산업이지만, 염연히 주주들이 투자해 운영하는 민간기업이기에 한 국가의 통수권자가 이를 공공재로 단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않다.
이들의 주장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는 순간 경영의 자율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은행은 엄연한 민간기업이자,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란 점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다른 사기업과는 다르게 은행에게 요구시되는 공공성이라는 영역 때문이다.
은행업은 국민 대부분의 재산을 보관, 관리하는 대표적인 기관이기에 국민의 실생활과 국가의 경제성장 및 발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금산분리 등 각종 규제를 받는 '규제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반면, 지난 1997년 말 IMF 사태 후 부실화된 은행들을 재건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있었고, 이후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국민들의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민들이 예치한 돈을 버팀목 삼아 성장한 은행들은 지난해 급격한 금리상승 덕택에 무려 16조원(4대 금융지주)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이자이익만 40조원에 육박한다.
은행들은 이 같은 호실적을 명분삼아 지난해 1조3천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들에게도 총주주환원율 30% 이상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사태 등 모두가 힘들어했던 시기에 나홀로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은행직원 및 경영진들 역시 저마다의 리스크를 안고 노력한 만큼 이에 상응한 보상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은행들은 지탱해 준 '고객', 즉 막대한 수익으로 임직원들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하고, 주주들에게는 막대한 배당을 약속한 반면 고객, 즉 국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었는가를 묻고 있다.
은행권이 그 동안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수년전부터는 ESG경영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간 사회적 책임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나, 지금 우리사회는 국민들이 직면해 있는 현재의 고통과 역경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은행권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의 행보를 보자면, 그저 먼산 바라보듯 뒷짐지고, 외면하며, 뒤에선 '잔치상'을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고, 이는 빈축을 넘어 분노를 야기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과 여론의 뭇매가 계속되자 은행들은 서둘러 10조원 규모의 사회공헌활동을 비롯해 대출금리 인하, 채용규모 확대 등 사회 환원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다.
지난해 대비 대출금리는 하락했지만, 여전히 6%대에 머물고 있고, 급격한 금리인상에 차주들은 여전히 이자부담에서 허덕이고 있다.
요컨데,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은행에게 사회가 요구한 공공의 역할은 비단 '성과급 파티'나 '주주환원'이 아닌 높은 이자의 벽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는 서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은행 본연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 청년일보=이나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