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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배달앱 상생협의체, '천민자본주의' 표상(表象)

 

【 청년일보 】 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 상생협의체(이하 상생협의체)의 상생안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입점업체와 자영업자, 소상공인, 더 나아가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상생협의체는 그간 배달 플랫폼산업에서 축적된 다양한 난제를 일부나마 해결할 수 있는 ‘상생안’이 도출될 소통의 장(場)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구체적으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는 배달 중개 수수료를 포함해 최혜 대우 요구, 라이더 위치 정보 공유 등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기를 기대해 왔다.

 

그러나 지난 7월 23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열두 차례 동안 진행된 상생협의체는 결국 참여단체 전원이 합의한 상생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배달 플랫폼업계를 주도하는 1·2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 쿠팡이츠가 오직 자사의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탓에 열두 번의 걸친 논의는 진척을 보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상생협의체에 참여한 한 입점업체 측 관계자는 “이 자리가 진정 ‘상생’을 위한 자리인지, 경쟁사 간의 대결 구도와 이해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인지 혼동될 지경”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상생협의체’는 배달 플랫폼산업의 이해당사자들이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이 전제됐기에 마련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다.

 

상생협의체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어떠한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 자리는 보다 나은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미덕 중 하나인 도덕 감정(moral sentiments)을 배달 플랫폼산업에 내재화하고, 이를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요 배달 플랫폼 업체들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배달 플랫폼은 대한민국 외식 산업계에 등장한 이후 약 15년간 고루함이 넘쳐나는 입법 질서의 약점을 넘나들며 그 세를 급격히 불려오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배달 플랫폼 기업이 제시한 '약관'은 때로는 법체계를 월권하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라이더와 소비자를 기만하고 때로는 수익성을 위해 이들을 교묘히 악용해 오기도 했다.

 

물론,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에 이들 업체에 '월권'이라는 표현할 사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본 기자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 배달 플랫폼산업을 가장 관심 있고 흥미롭게 취재해 왔다. 지금껏 취재하며 그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모든 사실과 경험, 감정을 단 하나의 개념으로 표상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 pariakapitalismus)'다.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 Weber)가 제시한 이 개념은 경제주체가 사회적 공감 능력, 도덕의식 등을 유기한 상태로 오직 수익성만을 추구하며 질주하는, 또 그를 끊임없이 추동하는 경제 체제를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과거 유럽의 근대 자본주의자들이 이상으로 여겼던 '합리적 자본주의'가 실종된 상태를 말한다.

 

물론, 자본주의 그 자체는 다위니즘(Darwinism)에서 제시되고 있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필연적 속성을 고풍스럽게 담아낸 경제 체제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지난 300여 년간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 통용되고 있는 패러다임으로 자리했다는 점 역시 그렇다.

 

일부 정치인과 학계가 '시장의 자유'로 표현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이 약육강식의 원리는 2024년 대한민국의 배달 플랫폼산업에서 또 한 번 그 위용을 뽐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배달 플랫폼업계는 그동안 '자율적 규제', '자발적 상생' 등을 내세우며 입점업체·라이더·소비자 등과의 호혜적 이해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수없이 약속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과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이 이를 여러 번 약속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하지만,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배달 플랫폼산업에 터져 나온 고름을 닦아내고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마련된 상생협의체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 자본주의 질서로의 회귀, 반성, 성찰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업체 측의 고집스러운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에서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등 1세대 자본주의자들이 자유로운 시장 질서와 함께 요구했던 도덕적 공감 의식과 책임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배달 플랫폼산업은 플랫폼 사업자는 물론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입점업체, 실제 배달을 수행하는 라이더, 이러한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사업구조를 띄고 있다.

 

플랫폼(platform)은 그를 이용하는 승객 없이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근시안적 접근은 결국 플랫폼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최악의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배달 플랫폼업체가 이번 상생협의체 이후, 앞서 언급한 이해당사자들과 '합리적 자본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열의를 보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 '자율성' 등의 명분을 유지하며 사업을 전개하고 싶다면 말이다.

 

이와 같은 미약한 관념적 호소가 유효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 정부에서도 이미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당국이 배달 플랫폼을 위해 나서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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